한국의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이자 KBO 국제홍보위원.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 스포츠 선수입니다. 불같은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로 `코리안 특급 ` 이라는 별명이 생기긱도 햇으며 다저스의 1선발 에이스까지 올라갔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투수라 불려지면서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인물 입니다.
1973년 7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전파사를 하던 가정의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는지 교사의 추천으로 공주중동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중학교 3학년 시절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공주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어려웠던 집안 사정상 그렇게 배불리 먹진는 못했기에, 어릴 적부터 야구선수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으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 공에 대한 공포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공동묘지에 가서 담력훈련 겸 스윙훈련을 했다는 얘기는 요즘도 종종 회자되곤 합니다. 또한 하체단련을 위해 공주산성을 토끼뜀을 하며 오르내렸다는 트레이닝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단련하고 노력해서 일까? 고등학생 3학견 시절 청소년대표로 미국에 가게 되었고 이때 이후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무렵 고등학생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한화 이글스에서 계약금 3000만원을 하자고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한양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양대 생활을 하던 중 1993년 미국 버펄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나가 활약했으며 이때 애틀란트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에서 오퍼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는 애틀랜타 측에서 박찬호 에게 계약금 30만달러를 제안했지만 1994년에 그는 LA다저스에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하여 이때부터 메이저리그를 시작합니다.
박찬호 이후 2012년까지 거의 50명에 달하는 한국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지만 100만불 이상 계약은 겨우 10명 남짓이며, 더구나 20년의 세월의 흐른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액수입니다. 당시에도 100만 달러 이상은 드래프트 1라운더 계약금 수준이었고, 실제로 1993년 드래프트 전체 1번이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계약금 15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유망주 중에서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간 선수들은 대부분이 100만불 이상 계약금을 받은 선수들입니다.
LA다저스에서 좋은 성적으로 활동했던 그는 계약이 끝나자 에이스급 투수가 필요했던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박찬호를 영입하게 됩니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는 박찬호에게 제안한 연봉은 6500만달러(약729억)에 계약기간 5년 으로 엄청난 계약을 합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받은 연봉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서 받은 연봉만 따져도 1000천웍원 정도 입니다.여기에 한국에 있는 빌딩과 각종 수입을 더한다면 박찬호의 재산은 2000천억대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연금을 받을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 승수 124승을 기록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도 당연히 메이저리그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17년 동안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으니 최대 금액인 6만 5천 달러를 45살부터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경우 본인이 65세부터 수령받기를 원하여 대략 한화로 3억 원을 받는 혜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다 박찬호 부인 집안이 일본에서 유명한 부호로 일본 중앙토지주식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부인인 박리혜의 아버지는일본 부호 30위권에 들며, 1998년 일본 개인 세금 2억8179만 엔을 납부해 전체 국민 중 상위 76위에 등극했습니다. 박리혜는 아버지로 부터 1조원을 상속 받았습니다.
현재는 스타트업 사업에 투자도 하고 예능 방송에 출연도 하며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